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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공자 로봇의족 지원, 일자리까지 연계한다

2023-06-20

포스코, 국가유공자 지원사업

 

“거의 20년 만에 자전거 페달을 밟을 때 느낌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이제 두 발로 달리기도 할 수 있고요. 아이들과 함께 계곡물에도 들어갈 수 있어요. 모든 게 로봇 의족 덕분입니다.”  고영주(44)씨는 국가유공자다. 군 복무 중이던 2001년 12월, 야간훈련으로 교량 건설용 250㎏짜리 철근을 옮기다가 왼쪽 무릎을 다쳤다. 전역을 한 달 앞둔 시기였다. 당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다. 이듬해 병원에 갔더니 무릎뼈에 악성 종양이 생겼다고 했다. 희소암의 일종인 ‘골육종’이었다. 치료비로만 2억원을 썼다. 고씨는 “주변의 도움을 받아 직접 국가보훈처에 국가유공자 신청을 했고 전역 7년 만에 인정받았다”고 말했다.  그의 투병 생활은 계속됐다. 2015년에는 수술로 삽입한 인공관절이 부러지면서 염증이 발생했다. 다리를 살리기 위해 수술만 40차례 했지만, 결국 2017년 왼쪽 다리를 잃었다. 당시 나이 서른아홉이었다. 당시 정부에서 기계식 의족을 지원했지만 일상을 회복하기에는 무척 불편했다. 고씨는 “보훈처에 문의했더니 예산이 한정돼 있어서 원하는 의족을 지급하기는 어렵다고 했다”면서 “보조금에 사비를 보태서 다른 의족을 구하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승인되지 않았다”고 했다. 

 

 

▲ 포스코1%나눔재단의 국가유공자 대상 첨단 보조기구 지원으로 로봇 의족을 받은 고영주(앞줄 왼쪽에서 셋째)씨. 그는 포스코의 자회사형 장애인 표준사업장인 포스코휴먼스에 지난 2021년 입사했다. /포스코

로봇 의족이 바꾼 일상 

국내 전상·공상으로 퇴직한 국가유공자는 60만명이다. 이 가운데 12만명이 장애인이다. 고영주씨는 2008년 국가보훈처로부터 공상(公傷) 판정을 받았다. 공상은 교육이나 훈련 과정에서 입은 상해를 뜻한다. 보훈처가 제대 후 확진받은 골육종을 군 복무 중 부상으로 인한 질병으로 인정한 것이다.  국가유공자는 상이등급에 따라 연금이나 의료기구 등이 제공되지만, 로봇 의족과 같은 첨단보조기구는 정부 지원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국가보훈부의 보철구 지원 예산은 60억원 수준으로 개인 맞춤형 기구를 구매하기에는 부족한 상황이다.  고영주씨가 로봇 의족을 이용하게 된 건 민간 차원에서 이뤄지는 사회공헌 사업 덕분이다. 포스코1%나눔재단은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이던 2020년부터 국가유공자의 일상 복귀를 돕기 위해 첨단 보조기구를 지원하고 있다.  재단은 매년 10억원을 투입해 로봇의수족 첨단 휠체어 시청각기구 등을 보급하고 있다. 포스코 관계자는 “국가유공자법에는 퇴직해야 유공자 신청이 가능하게 돼 있기 때문에 현직들은 배제되는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며 “재단에서는 장애를 입은 소방공무원이나 군인을 준국가유공자로 판단해 지원 대상에 포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덕분에 지난 2021년 한강하구 습지 수색작전 도중 지뢰 폭발로 부상을 당한 육군 17사단 소속 박우근 상사도 로봇 의족을 지원받을 수 있었다. 지난 3년간 재단의 지원으로 첨단 보조기구를 지원받은 장애인은 로봇 의수족 62명, 첨단 휠체어 25명, 시청각기구 19명 등 106명에 이른다. 지난해 국가보훈처와 맺은 3년간 업무협약이 종료될 예정이었지만, 올해 2년을 더 연장했다.  첨단 보조기구는 비싸다. 로봇 의족 한 대에 약 5000만원. 중형 세단 가격과 맞먹는다. 값비싼 만큼 장애인의 일상을 확 바꾼다. 로봇 의족은 기존 기계식 의족과 달리 발을 디딜 때 주변 상황에 맞게 자동으로 발목을 움직이고, 한 발로 서 있을 수 있다. 기계식 의족은 의지와 상관없이 몸의 균형을 잃고 넘어질 위험이 있지만, 로봇 의족은 인체와 비슷한 수준으로 움직여 다른 골격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한다. 덕분에 언덕이나 계단도 비장애인처럼 오르내릴 수 있고, 가볍게 달릴 수도 있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과 연동해 사용 모드를 설정할 수 있고, 배터리도 한 번 완충하면 일주일은 쓸 수 있다. 

▲ 지난 13일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이 국가유공자 장애인 직원인 고영주씨를 격려하기 위해 작업장을 깜짝 방문했다. /포스코

국가유공자 일자리 연계까지 

 

포스코1%나눔재단에서는 첨단 보조기구 지원 대상자를 공모로 선정한다. 대상자 발굴에는 재단과 국가보훈처, 의무사령부, 소방청 등이 참여한다. 보훈처 산하 중앙보훈병원과 기구 공급사는 지원 대상자의 의학적 적합성을 검토하고, 현장 면담을 통해 최종 대상자를 정한다. 이 과정에서 인연을 맺은 장애인 국가유공자의 일자리도 연계한다.  일자리 연계 1호 직원이 바로 고영주씨다. 고씨는 로봇 의족을 지원받은 이후 2021년 포스코의 자회사형 장애인표준사업장인 포스코휴먼스에 입사했다. 현재 광양 클리닝센터에서 옷 수선 업무를 맡고 있다. 업무 만족도는 높다. 고씨는 “자동차 선팅 사업도 하고 전기자격증을 취득해 직장을 다니기도 했는데, 업무 강도와 작업 환경 면에서 지금이 가장 좋다”고 말했다.  지난 13일에는 고씨에게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국가유공자 직원인 고씨를 격려하기 위해 포스코휴먼스 광양 작업장을 찾은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이다. 최 회장은 국가유공자 첨단 기구 지원 사업을 통해 입사한 고씨의 근황이 궁금했다며 한번쯤 만나고 싶었다고 했다. 이날 최 회장은 고씨가 작업하는 수선실에서 한참을 머물며 그간의 사연과 회사 생활, 취미 등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고씨는 “가족과 부산으로 여행을 자주 가는데 그 이야기가 전해졌는지 부산항 크루즈 1박2일권을 선물 받았다”며 “더 많은 국가유공자가 일상을 회복하고 사회 참여에 나설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일상의 영역은 조금씩 넓어지고 있다. 고씨는 “몸이 조금 불편하다고 해서 소파에 퍼져 있고 싶지 않다”며 “주말이면 광양 중마장애인복지관에서 발달장애인 아이들과 만나 놀이도 하고 나들이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이어 “최근에는 더 많은 사람을 돕기 위해 수어를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